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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에서 불타는 하룻밤을 보낸후 대구맑은탕과 좋은데이 한잔으로 해장을 한다음 광안대교와 부산항대교를 지나서 아침일찍 태종대를 찾았습니다. 태종대는 신라의 태종 무열왕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뒤 국토순례길에 나섰다가 이곳의 절경에 감탄하여 머물다간 곳이라 하여 태종대라 이름지어졌다고 하지요. 순환도로를 따라 도보 또는 다누비열차를 타고 둘러볼수 있는데 전망대앞, 등대앞, 태종사앞 등 몇개의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주변을 관람후 다음 열차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올수 있습니다.
태종대는 유람선을 타고 해상관광을 할수도 있는데 날씨가 좋은날에는 저멀리 대마도가 육안으로도 보입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바닷물은 하나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곳을 기준으로 남해바다와 동해바다로 나뉜다고 합니다.
항로표지소(등대)
등대 아래쪽에 평평하고 넓은 바위는 신선들이 놀았던 곳이라 하여 신선바위라 하며 해식작용으로 갈라진 건너편에
우뚝솟은 바위는 왜국으로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며 바다를 바라보다 돌이된 여인의 전설을 가진 망부석입니다.
멀리 보이는 섬은 주전자를 닮았다 하여 주전자섬이라고 합니다.
신선바위와 주전자섬 사이로 때마침 멸치잡이 선단이 조업중입니다.
공룡들도 이곳에서 놀다갔는지 발자국을 남겼네요.
수평선 너머 망망대해를 따라가면 남태평양 어딘가에 도달하겠지요.
억겁의 세월동안 쉼없이 부딪히는 파도에 단단한 바위도 갈라지고 쪼개지는데 지금도 해식작용은 진행중입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잃고 헤메였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1935년 우리나라 최초, 유일의 도개교로 건설된 영도다리는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말처럼 6.25전쟁당시
이곳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만남의 장소로 유명해진 곳이었으며
1966년 도개기능이 정지되었고 교량의 노후화에 따라 2003년 해체되었다가 2013년말 왕복6차선의 영도대교로
개통되면서 도개기능도 복원되어 관광객들에게 추억과 볼거리를 주는 부산의 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영도대교는 지나는 선박이 없어도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매일 12시에 도개를 합니다.
사이렌이 울리고 다리위에 통행을 막기위한 차단기가 내려가자 다리상판 한쪽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도개된 상판 아래로 때마침 배한척이 지나갑니다.
상판이 완전히 올라갔네요.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여기는 자갈치시장입니더.
국내 최대의 어시장답게 위판장을 비롯해서 수산물과 건어물, 횟집, 먹자집등 바다의 모든것이 있습니다.
위판장에 나온 생선들이 얼음을 덮어쓴채 새주인을 기다립니다.
바닥에 부려진 엄청난 양의 오징어들은 아주머니들의 손을 거쳐 크기대로 분류되어 상자에 담겨집니다.
오징어잡이 어선의 어창에서 트럭까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하여 오징어를 하역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