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명종대왕 태실

kingking 2011. 10. 31. 08:34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명종대왕의 태를 모신 胎室과 碑가 있다. 명종(재위1545~1567)은 중종의 둘째아들로 인종의 아우이다. 인종임금이 재위 8개월만에 승하하자 당시 12살의 명종이 즉위했지만 나이가 어려 모후인 문정왕후가 섭정하는 과정에서 국정이 혼란하여 임꺽정의 난과 왜구의 침입등이 있었던 시기이다. 태실은 중종때(1538년) 만들어진 것을 1975년에 복원하였고 태실비는 명종 즉위시(1545년) 만들고 숙종때(1711년) 다시 세운 것이라 한다. 운산면과 해미면간 647번 지방도에는 문수사와 명종대왕 태실이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태실은 농협 한우개량소 목장안에 위치해 있어 구제역 방역을 위해 철문을 잠가놓아 외부인의 출입이 쉽지 않을뿐 아니라 소의 배설물이 밤하늘의 별처럼 흩어져 있는 언덕을 올라 철조망을 통과해야 갈수있어 아쉬움이 크다.  왕자의 태를 모시는 것은 국태민안과 왕실의 발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당대 최고의 지관이 명당터를 잡아 태실을 만든 것인데 명종 자신은 34살의 젊은 나이에 승하했을뿐 아니라 재위기간중 왜구의 침입이 기승을 부리고 민란이 발생하는 등 태평성대를 누리지 못한것을 보면 명당같은 것은 원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嫡長子가 왕위를 물려받는 조선시대에 차남으로 태어난 명종은 왕이 될수없어 평생 大君으로 살아야 할 운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를수 있었던 것은 명당터에 태실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명종대왕태실 답사를 마쳤다.

 

산봉우리에 화강암을 이용하여 육각형으로 조성된 태실

 

 

태실 정면에 거북등에 조성된 태실비가 있다.

 

 

 

태실 올라가는 길은 잡목과 대숲이 우거져 있다.

 

 

봉우리 아래쪽은 초지로 쓰이고 중턱부터는 잡목이 우거져서 밑에서는 태실이 보이지 않는다.

 

 

 

 

방목지에 나와있는 소떼

 

 

목장안에 있는 용을 닮은 고사목